그리스인 이야기 1,2,3

주의! 이 책은 소설책이지 역사책이 아닙니다.

1

그리스인에 대해서 잘 묘사했다. 소설 «로마인 이야기»가 8할이 번역자분의 공로였다면, 이책의 8할은 고대 그리스인의 놀라운 활동 때문이다.

2

이 책을 역사책으로 본다면 답이 없고, 소설로 보자면 약간 지루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게임인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를 진행하면 훨씬 재미있다. 게임을 좋아한다면 이 책도 같이 읽어보자.


그리스인 이야기 1권

페리클레스도 클레이스테네스가 속한 아테네의 명문 중 명문 알크마이온 집안에서 태어났다. 오늘날까지 명성이 자자한 ‘아테네 민주정치’는 모두 최고의 엘리트들이 만들었다. 왜냐하면 고대 아테네의 ‘데모크라시’는 ‘국정 방향을 시민(데모스demos)의 손에 맡긴다’가 아니라 ‘국정 방향은 엘리트들이 생각해서 제안하고 시민에게 그 찬반을 맡긴다’이기 때문이다.

정복은 당연한 말이지만 군사력의 우열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군사력에 의한 정복을 패자가 받아들일지 말지는 정치력의 우열에 따라 결정된다.

첫째, 인간은 늘 희망적인 관측으로 기울기 마련이다. 훗날 로마인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이라면 그가 누구든 현실의 모든 면을 볼 수 없다. 많은 사람은 보고 싶은 현실밖에 보지 못한다.”

고대 그리스의 문화와 문명은 이오니아 지방에서 처음 발생했다. 탈레스(철학)는 밀레토스인이었다. 헤로도토스(역사)는 할리카르나소스 출신이었다. 피타고라스(수학)도 페르시아의 공격을 피해 남이탈리아의 크로토네로 도망쳐 그곳에서 학교를 열기 전에는 이오니아 지방 주민이었다. 히포크라테스(의학)가 본거지로 삼은 곳은 이오니아 근해의 코스 섬이었다. 이처럼 시대의 획을 긋는 문화와 문명은 다른 집단과 접촉해 받는 자극이 없으면 생겨나지 않는다.

정론을 펼칠 작정이었으면 처음부터 그렇게 하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인간세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스파르타인을 포함해서 인간이란 아직 현실이 되지 않은 단계에서 정론을 들으면 반드시 거기서 불평을 터뜨릴 요소를 찾아낸다. 그러나 현실을 앞에 두고 정론을 들으면 진심으로는 납득하지 못해도 그 정도에서 마무리하려는 마음이 들고 대응 또한 부드럽게 바뀌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성가신 생물인 인간에게 이성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철학’이다. 반대로 인간의 현명함과 어리석음을 일괄해서 그 모든 것을 써가는 것이 ‘역사’다. 이 두 가지를 그리스인이 창조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리스인 이야기 2권

의롭다거나 정직하다는 것은 개인의 인간관계에서는 칭찬을 받아 마땅한 ‘미덕’이다. 그러나 국가 관계에서는 그것이 반드시 ‘미덕’이 되지는 않는다. 정치의 세계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현재 여러분이 마주하고 있는 아테네의 영광과 번영은 많은 무명의 사람들이 일구어낸 성과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아테네다운 것이며 아테네에 영원한 생명을 안겨주는 것이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사랑합니다. 그러면서 절도를 유지합니다. 우리는 지식을 사랑합니다. 그러면서 유약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부의 추구에 무관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가능성을 확장시키기 위함이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했는지를 기록하는 역사는 이집트와 오리엔트에서도 예전부터 존재했다. 투키디데스의 위대함은 거기에 ‘왜’를 추가했다는 점이다. 아니, ‘왜’의 추구에 몰두했다는 점이다. 투키디데스는 34세 나이에 아테네 상류계급 사람이라면 당연한 진로인 정치가의 길이 막혔다. 이후 그가 삶에 대한 집념으로 드러낸 것이 세상 깊이 읽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나쁜 정치의 표본으로 공인된 우중정치라 해도 민주정치가 존재하지 않은 나라에서는 태어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리스인은 자기들이 쌓아 올린 가치관을 스스로 붕괴시키고 말았다.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를 읽고 밝은 느낌을 받는 것은 그리스인의 좋은 면을 집대성해서 묘사했기 때문이다. 투키디데스가 쓴 『펠로폰네소스전쟁사』의 서술이 시종일관 어두운 것은 그리스인의 나쁜 면을 집대성해서 묘사했기 때문이다. 불과 반세기 만에 같은 민족끼리 전쟁을 벌이는 상황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하면 더욱 암울해진다.

총사령관이 전략과 전술에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더라도 그 전력과 전술대로 움직이는 부장 수준의 인물이 없으면 전투에서 이길 수 없다.

역시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이 옳았다. 인간에게 최대 적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아테네인은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패했다. 다른 말로 하면 아테네인은 자멸했다.


그리스인 이야기 3

아테네에서 할 수 없는 일을 외국에서는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아테네에서 안 되면 어딜 가도 안 된다는 것이 당시 엘리트와 일반 서민의 공통점이었다. 이른바 ‘스파르타 패권 시대’가 왔지만 펠로폰네소스전쟁의 승자인 스파르타에는 파르테논에 필적할 만한 장엄하고 화려한 신전을 세우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테네가 있기에 그리스가 있다”라는 말은 과장도 아니고 과대평가도 아니었다.

소크라테스는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생각의 결과로 생겨난 것이 민주파이든 과두파이든 그것은 철학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소크라테스는 징병되면 스스로 전쟁터로 나갔고 추천으로 선출되면 국가 공무원으로도 근무했는데, 민주정치를 시행하고 있는 아테네라서가 아니라 조국 아테네의 시민으로서 책무를 다하겠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애국심에서 그렇게 한 것이었다.

소크라테스는 한 줄의 글도 남기지 않았다. 글로 쓴 작품이 없으면 그 사람의 인생 자체가 작품이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생을 마치는가’는 ‘어떻게 작품을 끝내는가’와 같은 말이다.

이탈리아어로 ‘Cavallo da Battaglia’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면 ‘전쟁터에 데리고 가는 말’이 되는데, 중요할 때 목숨을 맡기는 말을 의미한다. 카이로네이아, 그라니코스, 이소스, 가우가멜라, 그리고 인도에서 벌어진 마지막 전투까지 알렉산드로스가 승리한 모든 전투에서 그가 목숨을 맡긴 말은 부케팔로스였다.

고대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소년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은 기본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앞서 살았던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했는지 배우는 것이다. 이는 역사로 세로축을 가진 정보이다. 둘째, 이와 달리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로 가로축을 가진 정보이다. 여기서 배워야 할 점은 이들 정보에 대해 편견 없이 냉정하게 수용하는 자세를 확립하는 것이다. 마지막은 첫째와 둘째를 토대로 자기 머리로 생각해 자신의 의지로 냉철하게 판단한 다음 실행하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세 가지는 철학을 배우는 기본적인 자세이기도 한데, 이 원칙을 습득하면 그 후 어떤 분야로 진출하든 완전하게 응용이 가능하다.

화려한 물건 가운데 오리엔트의 기예가 들어간 아름다운 작은 상자가 하나 있었다. 상자 안에는 진주와 루비, 에메랄드가 들어 있었다. 그것을 본 알렉산드로스는 화려하게 만들어진 상자를 물끄러미 보면서 말했다. “나라면 상자 안에 『일리아스』를 넣어둘 텐데.”

일신교와 다신교의 차이는 신의 숫자에 있지 않다. 본질적인 차이는 다음과 같다. 자기가 믿는 신 외에는 인정하지 않는 것이 일신교이고, 자기가 믿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믿고 있기 때문에 그 신도 인정하는 것이 다신교이다. 싫은데도 불구하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기 때문에 인정하는 것이 다신교이다.

Written on June 25,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