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츠히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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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 ‘예술’의 최선두를 다릴게 될 ‘게임’에서 일어나는 가장 드라미틱한 이야기 ‘바츠히스토리’에 대한 ‘일대기’


  1. 이 사건은 바츠 역사상 아키러스가 사과를 한 처음이자 마지막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아키러스는 자손심이 강한 군주였다. 지금까지 그의 지휘 아래 많은 악행이 저질러졌지만 한 번도 사과를 한 적이 없었단. 한데 왜 유독 붉은혁명 혈원 사진 게재 사건에 대해서는 직접 사과를 한 것일까. 아키러스는 게임은 어디까지나 게임일 뿐, 그 시작과 끝이 게임속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2. […] 하지만 자리 싸움을 막기 위해 지정해놓은 공동 사냥터가 자리 싸움의 원인이 되어버린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그것은 단순한 자리 싸움에 그치지 않고 바츠대저전쟁의 도화선이 되어버렸다.

  3. […] 타 서버로 이동하여 반왕으로서의 꿈을 접었던 유저들이 ‘내복단’이라는 이름으로 용던에서의 전투에 참여하기 위하여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21세기 디지털 민주주의가 괴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 서버의 유저들이 속속바츠 서버로 모여들면서 초보자 마을이 붐비기 시작했다.

  4. 내복단의 활약은 DK동맹이나 바츠동맹 모두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다. 또한 그들의 활약과 전력 보탬은 예상 외로 컸다. 내복단은 바츠동맹 전력의 30%를 담당하면서 DK 동맹이 용던전투에서 패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내복단은 종종 전면전의 승패를 가르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5. 장장 1년간에 걸쳐 펼쳐진 1차 바츠대전쟁은 미완의 혁명으로 바츠역사에 기록되게 되었다. 하지만 연인원 수십만 명이 동원된, 비록 사이버상이지만 1950년 6.25 동란 이후 한반도에서 벌어진 최대의 전쟁으로 기록된 이 전쟁은 온라인게임의 발전과 역사에 기연한 흔적은 만만치 않다.

  6. 아키러스는 항상 동맹원들에게 중립혈을 ‘잠재적인 적’이라고 규정했다.

Written on January 1,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