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1

읽고 있노라면 역시나 비참해 지는 기분은 어쩔 수 없다.

2

잘 알지도 못하는 단어들의 나열 ‘실존주의’, ‘해방’, ‘본연’…. 난 그런걸 잘 모른다. 알아도 누구나 알고 있는 그런 뭉뚱그려놓은 그러한 단어의 연속들. 읽기전에 주늑들어 버린다.

3

피곤함이 가중되는 소설들. 현실을 비추는 보고싶지 않은 내면의 거울. 빛나다 못해서 눈이 부시는 눈물나게 슬픈 소설들의 모음. 읽고싶지 않지만 읽을 수 밖에 없었던 소설.


  1. “나는 멋진 상처를 갖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것이 내가 세상에 나오는 몸치장의 전부였다.” - «시골의사»

  2. “여기를 떠날 뿐이야. 여기서 나가는 거야. 어디까지라도 가 는 거야.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어” “그럼 가실 데가 있으시군요?” 하인이 물었다. “암 그럼” 나는 대답했다. “방금 말하지 않았나. 여기서 나가는 것. 그것이 내 목표야.” - «시골의사»

  3. 속은 거야, 속은 거야! 잘못 울린 야간 비상벨 소리에 덜컹 응했다가 –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지고 만 것이다. - «시골의사»

  4. 여동생은 자기가 보는 앞에서는 그레고르가 음식을 먹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자상하게 배려하여 부리나케 방에서 나가 주었다. 그러고는 그레고르가 편한 마음으로 실컷 먹어도 된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심지어 열쇠를 돌려 문을 잠가 주기까지 했다. -«변신»

  5. 텅 빈 벽을 바라보면 가슴이 미어터지는데, 그레고르라고 왜 똑같은 느낌을 받지 않겠느냐고 했다. 더구나 이 가구들과 오래전부터 정이 듬뿍 들었는데, 방 안이 휑뎅그렁하게 되면 자신이 버림받은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했다.-«변신»

  6.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여동생의 생각은 달랐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부모의 뜻을 거슬러 그레고르에 관한 일이라면 뭐든지 정통한 사람처럼 행세하는 데 익숙해졌다. (…) 이제 어머니의 충고가 도리어 여동생이 자신의 고집을 부리는 좋은 빌미가 되기도 했다.-«변신»

  7. 두 손으로 아버지의 뒷머리를 부여잡으며 애원했다. 제발 그레고르를 살려 달라고.-«변신»

  8. 음악에 이토록 감동받는데도 그가 짐승이란 말인가?-«변신»

  9. “내쫓아야 해요!” 여동생이 소리쳤다.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어요, 아버지. 저게 오빠라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우리가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해 왔다는 게 바로 우리의 진짜 불행이에요. 하지만 저게 어떻게 오빠일 수 있겠어요? 저게 오빠라면 인간이 자기 같은 짐승과 같이 살 수 없다는 걸 알아차리고 진작 제 발로 나갔을 거예요. 그랬다면 우리 곁에 오빠는 없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계속 오빠에 대한 추억을 소중히 간직할 수 있을 텐데요. 그런데 짐승은 우리를 쫓아다니며 못살게 굴고 하숙인들을 쫓아내면서, 이 집을 온통 독차지하고 들어앉아 우리를 길거리에 나앉게 하려는 게 분명해요. 저것 좀 보세요, 아버지!”-«변신»

  10. 소풍의 목적지에 이르러 딸이 맨 먼저 일어나 젊은 몸을 죽 펴며 기지개를 켜자 그들에게는 그 모습이 그들의 새로운 꿈들과 멋진 계획들을 확인해 주는 것처럼 생각되었다.-«변신»

  11. “이 기계는 매우 복잡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가끔씩 어디가 끊어지거나 부서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체적인 판단에 혼란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아닌 게 아니라 가죽 띠 정도는 당장 대체가 되거든요. 쇠사슬을 쓰면 되니까요. 물론 그로 인해 오른팔에 미치는 진동의 섬세함은 손상을 받겠지요.”-«유형지에서»

  12. <이곳에 전임 사령관이 잠들어 있다. 지금은 자신들의 이름을 밝힐 수 없는 그의 추종자들이 그의 무덤을 파고 묘비석을 세우노라.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면 사령관이 부활해 이 집에서 나와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유형지를 다시 탈환할 거라는 예언이 있다. 믿고 기다릴지어다!> -«유형지에서»

  13. “나는 자기 시대의 부정적인 면을 힘차게 끌어안고 말았다. 어쨌든 자기의 시대는 자기에게 가장 친근한 것이고 내게 이 시대의 싸울 권리는 없다고 하더라도 어느정도 그것을 대표할 권리는 있다. 나는 약간의 긍정면에도 또 긍정으로 옮길 만한 극단적인 부정면에도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나는 키에르케고르같이 이미 쇠약해져가는 그리스도교에 인도되어 온 것도 아니고 시오니스트들처럼 시대의 바람에 펄럭이는 유대교의 기도에 매달려 온 것도 아니다. 나는 종말이든가 아니면 발단(發端)이다.”- 카프카 유고(遺稿)에서 옮김

Written on January 1,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