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1. 성서의 히브리어 원본은 이렇게 시작한다. 빛의 창고, 그리고 공간의 창조. 이것은 태초의 조물주뿐 아니라 현대의 건축가들에게도 흥미 있는 주제다.

  2. 디자인이 대칭으로 흐르기 시작하면 내용은 이처럼 경직되기 쉽다. 이것이 현대의 디자이너들이 대칭을 달갑잖게 여기는 가장 큰 이유다.

  3. 기준점의 성격들은 마을 전체의 성격까지 규정하고 반영하므로 더욱 중요하다. 그 동네가 건축적으로 건강하다고 인정되기 위해서는 이런 좌표점들이 시각적인 중심에 머물지 않고 행동의 중심지 역할을 해야 한다. 이미 사라진 동네 우물가, 빨래터는 온갖 잡다한 소문이 모이고 흩어지는 곳이라는 점에서 시각과 행동의 중심지였다.

  4. 영역성은 같이 서 있는 사람과의 친밀도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기도 한다. 엘리베이터에 모르는 사람과 타게 되면 둘은 각각 사각형의 대각선 구석을 점유하고 서게 된다.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할 떄 모르는 사람이 같은 식탁에 앉게 되면 서로 대각선의 모서리에 앉는 것도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모습들이다.

  5. 특히, 시각적으로는 관통이 되어도 좋으나 출입이 통제되어야 할 부분에는 열주를 두어 그 공간을 구분하고 있다. 왕손이 아니면 이 열주는 넘어설 수 없는 벽이 된다.

  6. 건너기 전에 돌다리를 두들려보는 사람처럼, 선 하나를 그리면서도 고민을 해야 하는 시각 디자이너들이 이를 놓칠 리 없다. 이들이 만드는 선을 잘 들여다보면 과연 선에서 양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곧 꺠닫을 수 있다.

  7. 선이 두께를 갖게 되면서 표현되는 강약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

  8. 선은 위치뿐 아니라 길이도 갖는다. 선은 그 길이를 통하여 평면을 적극적으로 혹은 소극적으로 분할한다. 즉 선이 평면내에서 ‘비교적’ 길면 그 선을 경계로 하여 평면은 확연히 이쪽과 저쪽으로 분할된다.

  9. 피타고라스 이후 바흐, 베토벤은 물론이고 한국의 가요, 동요에 이르기까지 화성 전반을 규정하고 있는 화음이 5도 화음이다.

  10. 즉, 도와 다음 도는 주파수상 1:2의 비례 관계에 있다. 이 옥타브를 공평하게 12개의 반음으로 잘라 조바꿈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우리가 쓰고 있는 평균율에서는 5도 관계라 해도 뚝 떨어지게 2:3의 비례가 되지 않는다.

  11. 이 타협에 의해 조바꿈이 가능해지고 바흐의 <평균율곡집>이 서양 음악사에서 갖는 의미가 부각되는 것이다.

  12. 저렇게 그림을 그려도 화가라면 나라고 화가가 아니될 근거가 어디 있느냐고 우리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예는 곧 잘 등장하는 몬드리아이 그 대표 인물이다. 그림에서 군더더기들을 빼면 색체와 그 색면들의 비례만 남게 되고, 이들이 그림의 필요충분조건이라는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아이디어 덕분에 그는 아직도 ‘차가운 추상의 선구자’로 미술사 책에 등장한다. 미술의 가치는 창조에 있기 떄문이다. 이전의 그림들과 달리 그의 그림에서는 ‘사과와 소녀’가 아닌 ‘비례’가 들어 있는 것이다.

  13.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황금 분할의 적용 가능성을 샅샅이 탐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14. 건물을 휘게 하는 것은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다. 부수적인 많은 문제점을 감수하고 해결해야 한다. 건축가는 이런 어려움을 무릅써도 좋을 만큼 이곳에 굽은 건물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15. 사각형은 우리의 도시를 성냥갑의 집합체처럼 만든다는 오명을 쓰고 있다. 그런데 사각형이 그토록 끈질기게 사용되는 것은 다른 도형이 좀처럼 따라갈 수 없는 다양한 건축적 장점이 있기 떄문이다.

  16. 배흘림기둥들은 길이까지도 그 위치에 꼭 맞게 재단된, 극도로 자족적인, 그리하여 기둥으로서 완결된 모습을 보여준다.

  17. 특히 현대에 들어서면서 공간은 건축의 가장 중요한 이슈로 전면에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18. 우리의 옛 건물에서 보듯 지붕은 건물의 외관상 벽보다 훨씬 중요하다.

  19. 기단의 높이를 통하여 대웅전은 우리가 서 있는 속세와 근본적으로 다른 세상에 있음을 이야기한다.

  20. 밤하늘 가득 쏟아질 듯이 뿌려져 있는 별들이 주는 감동은 테두리 없이 하늘을 꽉 메운 압도적인 스케일을 뺴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21. 아무리 달리 재도 황금 분할로는 해석되지 않는 건물들이 탄생한 것이다. 그리스 시대의 이탈리아 사람들이 당연히 이 이상한 문화를 곱게 볼 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 이름도 오랑캐 고트족의 추악한 문화라는 의미에서 ‘고딕’이라고 붙여졌다.

  22. “공간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빛을 디자인하는 것” - 루이 칸

  23. 우리 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벽돌 각 변의 길이는 57mm x 90mm x 190mm 이다. 일견 무작위로 정해진 것으로 보일 수 있는 이 치수는 시행착오 끝에 사려 깊게 결정된 것이다.

  24. 건물은 움직이지 않는다 하여도 우리는 움직여 돌아다닌다.

  25. 이처럼 소리로 치환되어 느껴질 수 있는 문의 무게는 그것이 갈라놓은 공간의 성격을 표현해 주기도 한다.

  26. 빛은 부유한 자의 어꺠에도 가난한 자의 어깨에도 비친다.

  27. 빛의 가장 큰 아름다움은 가득한 풍요로움과 공평함에 있다.

  28. 밤늦게까지 불 켜진 사무실 건물들은 도시 야경을 결정한다.

  29. 도시의 환경은 자본을 동원한다고 마음대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소득이 높은 도시가 가장 아름다운 도시는 아니다.

  30. 이처럼 복잡한 인간 잡사가 길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길은 곧게 뻗은 것보다 오히려 구불구불한 것이 더 좋을수도 있다.

  31. 규칙이 없는 경쟁은 곧 전쟁으로 바뀐다.

  32. 이렇듯 학교는 건축으로 구현된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33. 인간은 평등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소리 높여 주장해야 하는 상황이면 이미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34. 한국의 빛나는 전통 문화라는 것이 오늘날도 반드시 그대로 모방, 답습되어야 한다는 정태적 피해 의식은 21세기의 어딘가를 달리고 있어야 할 건축가들의 발목을 잡아왔다.

Written on January 1,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