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B가 준비해온 총을 뽑아서 족장과 함께 나온 원주민 중 한 명을 쐈다. 원주민 족장이 말했다. “일곱 켤레로 하시죠.” 시장이 개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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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주 넓은 지식을 저자의 관점으로 재구성해서 알려준다. ‘아주 넓은’ 지식을 굉장히 ‘얕게’ 알려준다고 생각하면 경기도 오산이다. 절대로 얕지 않다. 그리고 지식의 범위가 엄청나게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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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에 대해서 ‘아주’ 체계적이고 이론적인 지식을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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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채택한 지식의 구조와 형태는 꼭 배우고 싶다. 아주 넓은 지식을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1. […] 현대 철학의 거물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책 《철학적 탐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자가 말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삶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주어진 환경과 개인의 경험이 다르다면 우리는 같은 말을 한다 해도 서로를 조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2. […] 이렇게 역사를 다섯 가지 단계로 구분하는 익숙한 방식은 우리에게 공산주의 혁명가로 알려진 마르크스의 ‘역사 발전 5단계 설’에서 기인한다. 마르크스는 역사를 다섯 단계로 구분하면서 역사가 원시 공산사회, 고대 노예제사회, 중세 봉건제사회, 근대 자본주의를 지나 결국 자본주의 사회의 붕괴로 귀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가 내적 모순으로 붕괴된 이후에는 경제적 평등이 달성되는 공산주의 사회가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하지만 현시점의 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그 예견은 빗나간 것처럼 보인다. 공산주의라 부를 수 있는 사회를 찾아보기 힘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현존하는 공산주의 사회는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3. […] 생산수단과 생산물. 하나를 더 기억한다면, 생산수단과 생산물에 의해 발생하는 권력. […] 생산수단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다른 사람의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4. […] 대치 구조가 명확해졌다. 구권력인 왕과 영주들은 장원을 생산수단으로 소유하고, 종교로부터 지배의 정당성을 얻었다. 반면 신권력인 부르주아들은 공장과 상업을 생산수단으로 소유하고, 이성으로부터 권력의 정당성을 얻었다.

  5. […] 전체적으로 공급과잉의 문제는 발생하고 있었고, 모든 산업에서 가격을 낮추기 위한 노동자 해고 사태가 일어나고 있었다. 문제는 노동자는 노동자인 동시에 소비자라는 것이다. 해고당한 노동자는 소비 능력을 상실한 소비자와 동일하다. 다시 말해서, 사회 전체적으로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사회 전반의 소비가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때 소비가 줄어든다는 말은 상대적으로 공급량이 더 많아진다는 것이고,

  6. 이러한 문제 해결 방식을,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수정한다는 의미에서 ‘수정 자본주의’ 혹은 앞선 초기 자본주의와의 차이를 강조하기 위해서 ‘후기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7. […] 영웅사관이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능력을 초월하는 천재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특정 인물이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이와 반대되는 역사관이 민중사관이다. 민중사관은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체를 민중으로 본다. 우리가 세계대전을 영웅사관의 시각으로 본다면, 세계대전을 일으킨 사람은 히틀러가 된다. 반면 세계대전을 민중사관의 시각으로 본다면, 세계대전을 일으킨 원인은 경기침체의 고통을 극복하고자 했던 독일 민족의 의지가 된다. 영웅사관과 민중사관은 어느 것은 옳고 다른 것은 그르다기보다는, 역사 해석을 다채롭게 해주는 역사 사유의 두 시각이라고 하겠다.

  8. ‘국가’는 요청된다. 국가라는 개념은 신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지배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특히 ‘애국’에 대한 강요는 지배자들을 편리하게 한다. 그래서 애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장려되고 교육된다. 애국자와 국가유공자에 대한 보상과 기념 절차에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이루어지고, 사회는 이들을 지칭하는 어휘를 검열하고 교정한다. 반대로 애국과 거리가 먼 사람들에게는 공공연한 정치ㆍ사회적 압력이 가해지고, 이들을 지칭하는 어휘들에는 거칠고 모욕적이며 배타적인 언어들이 허용된다.

  9. 사람은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야만 한다는 인간적 한계로 인해서,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나름대로 해석하며 살아간다. 자신이 경험한 만큼의 세상만을 이해하며 사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과거를 상상할 때, 과거의 사람들도 우리와 비슷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슷하게 생각하고, 비슷하게 느끼고, 비슷하게 소비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계는 신자유주의라는 매우 소비적이고 시장중심적인,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매우 독특한 세계다.

  10. 경제체제란 초기 자본주의, 후기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공산주의다. 이 네 가지 경제체제 정도는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기억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네 가지 경제체제는 하나의 기준에 따라 단순하게 구분되기 때문이다. 기준은 ‘정부의 시장 개입 정도’다.

  11. 다시 말해, 오늘날의 ‘시장’이란 상품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모든 영역을 의미한다. 더 단순화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시장은 사회 전체나 다름없다. 사회 안에 시장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추상적인 사회를 가능하게 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오늘날 시장은 사회 전체다.

  12. 전제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다시 말해서, 시민들이 국가의 현재 상황을 고려해서 성장과 분배, 시장 자유와 정부 개입, 세금 축소와 복지 확대 중 개인과 사회에 이익이 되는 가치를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전제된다. 부러운 사회다.

  13. 왜냐하면 그건 내가 한 게 아니라 독재자가 한 것이고, 경제 회복을 위해서 전체가 함께 동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없다. 전체주의는 개인의 존재 가치를 절하하고, 집단과 전체의 가치를 앞세운다.

  14. 하나는 의미론이고, 다른 하나가 화용론이다. 의미론은 내가 내뱉은 말 자체의 내용과 의미를 탐구한다. 반면 화용론은 내가 내뱉은 말이 왜 하필 그 시간, 그 공간, 그 주체와 대상 가운데서 말해졌는가를 파악하려 한다. 예를 들어보자. ‘물’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무엇인가? 의미론적으로 물은 ‘자연계에 강, 호수, 바다 따위의 형태로 널리 분포한 액체, 산소와 수소의 화학적 결합물’ 정도로 파악할 수 있다.

  15. 어감에서 오는 뉘앙스는, 도덕은 실천적인 느낌이 강하고 윤리는 이론적인 느낌이 강하다. 쉽게 말하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합의하고 암묵적으로 준수하는 규범이나 규칙을 도덕이라고 하고, 그런 규범과 규칙이 정당한지를 의심하고 검토하는 것을 윤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우리는 도덕이 아닌 윤리를 다룰 것이다.

  16. 인간의 이성이 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천이성은 무엇인가 실행하는 것으로, 단적으로 윤리를 말한다. 《실천이성비판》은 윤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판단력비판》은 아름다움, 미에 대한 것으로, 미학을 제시한다. 우리가 지금 다루려고 하는 의무론적 윤리설은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의 핵심적 논지가 된다.

  17.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 타당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를 이 말을 쉽게 바꿔보면 “네가 개인적으로 하려는 일이 동시에 모든 사람이 해도 괜찮은 일이지 생각하고 행동하라” 정도가 되겠다.

  18. 이렇게 단순 무식한 공리주의를 세련되게 만들어준 인물이 존 스튜어트 밀이다. 밀은 질적 공리주의를 통해 쾌락과 행복에도 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밝혔다.

  19. SBS가 연예와 오락 중심으로 방송을 편성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을 그나마 안정된 세계라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치적 성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헤치지 않는 것, 정치적 사안의 심각성을 강조하지 않는 것은 중립이나 비정치적인 성향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에 구조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보수적인 세계관이다.

Written on February 21,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