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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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가,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너무 슬프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1. 도청을 비우고 다 같이 피해버리면 되잖아요. 왜 누군 가고 누군 남아요. […] 군인들이 무섭지, 죽은 사람들이 뭐가 무섭다고요.

  2. 진수 오빠가 노크를 하고 그 방에 들어온 것은 열한시경이었다. 무전기를 들고 다니는 모습은 늘 봤지만, 총까지 멘 모습은 처음이라 낯설어 보였다. 세명만 남아주시겠습니까,라고 그는 말했다. 아침까지 가두방송을 해주실 세분만 있으면 됩니다. 나머지는 집으로 돌아가세요.

  3. 애국가에 맞춰 군인들이 발포한 건 오후 한시경이었습니다. 시위 대열 중간에 서 있던 나는 달아났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산산조각나 흩어졌습니다. 총소리는 광장에서만 들리는 게 아니었습니다

  4.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주겠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들이 너희들이라는 걸, 우리가 증명해주겠다.

  5. 우리는 총을 들었지, 그렇지?나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그에게 대꾸하지도 않았습니다.그게 우릴 지켜줄 줄 알았지.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는 일에 익숙한 듯, 그는 술잔을 향해 희미하게 웃었습니다.하지만 우린 그걸 쏘지도 못했어.

  6. 언니는 신도 믿고 인간도 믿으니까. 난 한번도 언니에게 설득되지 않았어.오직 사랑으로 우릴 지켜본다는 존재를 믿을 수 없었어.주기도문조차 끝까지 소리 내 읽을 수 없었어. 내가 그들의 죄를 사한 것같이 아버지가 내 죄를 사할 거라니.난 아무것도 사하지 않고 사함 받지 않아.

  7. 견디는 것은 당신이 가장 잘하는 일이다.

  8. 이라다가 남은 아들까장 잃어버릴 것 같아서 그렇게 말을 했다이.그렇게 너를 영영 잃어버렸다이.내 손으로 느이 작은형 팔을 끌고, 내 발로 돌아서서 집으로 갔다이. 모두 다 죽어버린 것맨이로 캄캄한 거리를, 사십분을 둘이 울면서 걸어 돌아갔다이.인자 나는 암것도 알 수 없어야. 겁이 나서 얼굴이 파랗게 굳어 있던 시민군들, 어리디어리던 그 자석들도 죽었으까이. 그리 허망하게 죽을 것을, 왜 끝까장 나를 안 들여보내줬으까이.

  9.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10. 대부분의 사람들이 총을 받기만 했을 뿐 쏘지 못했다. 패배할 것을 알면서 왜 남았느냐는 질문에, 살아남은 증언자들은 모두 비슷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Written on February 21,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