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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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가,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너무 슬프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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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을 비우고 다 같이 피해버리면 되잖아요. 왜 누군 가고 누군 남아요. […] 군인들이 무섭지, 죽은 사람들이 뭐가 무섭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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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 오빠가 노크를 하고 그 방에 들어온 것은 열한시경이었다. 무전기를 들고 다니는 모습은 늘 봤지만, 총까지 멘 모습은 처음이라 낯설어 보였다. 세명만 남아주시겠습니까,라고 그는 말했다. 아침까지 가두방송을 해주실 세분만 있으면 됩니다. 나머지는 집으로 돌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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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에 맞춰 군인들이 발포한 건 오후 한시경이었습니다. 시위 대열 중간에 서 있던 나는 달아났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산산조각나 흩어졌습니다. 총소리는 광장에서만 들리는 게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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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주겠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들이 너희들이라는 걸, 우리가 증명해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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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총을 들었지, 그렇지?나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그에게 대꾸하지도 않았습니다.그게 우릴 지켜줄 줄 알았지.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는 일에 익숙한 듯, 그는 술잔을 향해 희미하게 웃었습니다.하지만 우린 그걸 쏘지도 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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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신도 믿고 인간도 믿으니까. 난 한번도 언니에게 설득되지 않았어.오직 사랑으로 우릴 지켜본다는 존재를 믿을 수 없었어.주기도문조차 끝까지 소리 내 읽을 수 없었어. 내가 그들의 죄를 사한 것같이 아버지가 내 죄를 사할 거라니.난 아무것도 사하지 않고 사함 받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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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는 것은 당신이 가장 잘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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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다가 남은 아들까장 잃어버릴 것 같아서 그렇게 말을 했다이.그렇게 너를 영영 잃어버렸다이.내 손으로 느이 작은형 팔을 끌고, 내 발로 돌아서서 집으로 갔다이. 모두 다 죽어버린 것맨이로 캄캄한 거리를, 사십분을 둘이 울면서 걸어 돌아갔다이.인자 나는 암것도 알 수 없어야. 겁이 나서 얼굴이 파랗게 굳어 있던 시민군들, 어리디어리던 그 자석들도 죽었으까이. 그리 허망하게 죽을 것을, 왜 끝까장 나를 안 들여보내줬으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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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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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이 총을 받기만 했을 뿐 쏘지 못했다. 패배할 것을 알면서 왜 남았느냐는 질문에, 살아남은 증언자들은 모두 비슷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