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언트 - 영어 유창성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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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은 알아냈으나, 그 비밀이 내 것이 아니라는 슬픈 사실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는 긍정과 부정의 시간을 가져다 줬던 책이라 할 수 있다.
영어가 소위 ‘글로벌 언어’로 부상한 이유는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광범위한 지리적 분포, 서로 다른 영어 사용 집단끼리의 상호 소통 가능, 이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중국어가 부상하면 영어를 안 배워도 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어·중국어·영어는 반드시 할 줄 알아야 하는 시대가 되는 것이다.
장기적인 언어 학습 계획을 세우고 공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구글 번역기 등의 기계적 통역 기술이 발달하면 오히려 기계가 따라 올 수 없는 감정 소통까지 가능한 수준의 영어 능력자를 필요로 하는 곳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영어로 감정 소통까지 하려면 적어도 매일 1~2시간씩 5~7년의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무엇보다 외국어 공부는 연애만큼이나 타 문화에 대한 사랑과 이해를 요구하는 감성투자다. 그런데 장기 계획 없이 유행에 맞추어 공부법과 외국어를 수시로 바꾸는 것은 실패를 보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 발음의 사소한 문제 같은 것은 소통의 문제라기보다 20세기 중반의 미국인이 가졌던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적인 인종관의 문제였다.
하지만 영어처럼 몇 개의 문화와 관습이 서로 다른 민족이 한곳에 더불어 사는 데 필요한 최소 소통만을 위해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언어는 감정의 깊이보다는 얼마나 적은 단어와 단순한 문법으로 실용적인 소통을 할 수 있는가가 더욱 중요하다.
영어는 동사 위주로 발달한 언어이기 때문에 문법을 복잡하게 사용하기보다는 동사 자체를 점점 화려하게 꾸미는 경우가 훨씬 많은데, 가장 많이 쓰이는 ‘동사 액세서리’는 다음 네 가지일 것이다. re~ pre~ post~ un~ 다시 돌리다 먼저 하다 끝나고 하다 원래대로 복구하다 이런 액세서리를 동사의 앞뒤에 붙여 동사의 의미를 변형시키는 것이다. 앞에 ‘계획하다’라는 문장을 이용한 다음의 대화를 보자. ■ Me : I planned it. (나 : 다 계획했어요) ■ Boss : Re-plan it. (상사 : 처음부터 다시 계획해) 상당히 복잡한 문법을 사용해야 할 것 같은 문장이 동사를 굴곡시키면 의외로 단순하게 처리된다. 또 하나의 예를 보자. ■ Director : Here’s the tape. (감독 : 여기 테이프요) ■ Editor : I will post-produce now. (에디터 : 후반작업 시작할게요)
사실 머레이의 업적 덕분에 언어학자들은 단어가 태어나고 없어지는 일정한 패턴을 발견했다. 단어는 여러 가지 소리의 입자로 구성되어 있고, 그 입자는 서로 붙었다 떨어졌다 하면서 새로운 단어를 만든다는 것이 머레이가 집대성한 단어의 가계도 속에서 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각은 단어가 생성되는 방식을 연구하는 ‘형태론’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단어는 암기로 익혀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소리의 입자를 일정한 규칙으로 붙여서 만들어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후부터 사람들은 단어가 아무리 많아도 암기에 대한 부담이 없어졌다. 리트레가 현미경으로 단어의 입자를 들여다보았다면, 머레이는 단어가 태어난 순간부터 소멸하기까지 긴 여정을 족보가 뻗어나가는 지도로 그렸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