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미학 에세이 - 예술의 눈으로 세상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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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씨가 발표한 에세이를 묶어서 출판한 책이다. 미학의 관점에서 사회적인 내용 및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어려운 내용을 좀 덜 어렵게 잘쓴다고 생각한다. 원래 어려운 내용은 어렵게 이해하는게 올바른거 아닐까?
미학에서 ‘하마르티아’는 주로 아리스토텔레스와 관련하여 논의된다. 《시학》 은 비극의 주인공을 이렇게 정의한다. “덕과 정의에서 월등하지는 않으나 악덕과 비행 때문이 아니라, 어떤 과실 때문에 불행에 빠진 인물.” 이는 물론 ‘공포(phobia)’와 ‘연민(eleos)’이라는 비극의 효과와 직접 관련이 있다. “연민의 감정은 부당하게 불행에 빠지는 것을 볼 때 환기되며, 공포의 감정은 우리와 비슷한 자가 불행에 빠지는 것을 볼 때 환기”되기 때문이다.
《황금가지》 의 설명에 따르면, 그보다 더 오래전에는 인형 대신 사람의 목을 쳤다고 한다. 그 시절 목이 날아간 것은 놀랍게도 ‘왕’이나 ‘신’이라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주술의 시대에 은유는 곧 현실, 당시에 ‘왕’이나 ‘신’은 자연의 생장력에 대한 은유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노쇠해진 왕이나 신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다시 젊고 건강한 왕을 앉혔다. 물론 자연의 생장력을 왕성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차차 왕권이 증대되면서 왕은 자기 대신 아들을 살해하게 만들었다. 나중에는 이마저도 인간을 대신하여 동물을 죽이는 것으로 대체된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이 과정의 상징적 기술이 아닐까? 야훼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100세에 얻은 귀한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 명한다. 하지만 정작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이삭의 목을 베려 하자, 야훼는 이를 만류하며 그 옆 덤불에 걸린 양을 대신 바치라고 명한다.
좀더 넓은 의미에서 ‘회복’은 “그 어떤 전복적인 작품이나 사상이라도 주류와 공식 문화에 의해 문화적으로 전유되고 마는 현상”을 가리킬 수도 있다. 당장 떠오르는 것은 바로 아방가르드 예술의 운명이다. 한때 부르주아 문화에 충격을 던져주었던 아방가르드 예술도 오늘날 자기들이 그토록 싫어하던 문화의 아이콘이 되어 미술관 안에서 온갖 영예를 누린다. 가령 ‘예술 문화’ 자체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비판이었던 뒤샹의 변기. 오늘날 그것은 20세기 최고의 예술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전문가주의의 오류랄까? 기술적 형상을 읽는 것이 전문가만의 특권이라 말하지 말라. 그것은 사회에 책임이 있는 모든 시민의 과제이자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