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인물사 중심
알라딘에서 무료로 배포하는 책 중에서 눈에 띄는 제목이 있어서 읽기 시작했다. 인물사를 중심으로 인터넷의 역사에 대해서 서술한 책이고, 중간 중간에 ‘호롱불’과 같이 ‘덕심’을 자극하는 프로그램 소개등이 나와서 흥미있게 읽었다.
새로운 사실도 많이 알게 되었고 특히 구글의 애드센스는 많이 신선했다.
“양꼬치엔 칭따오, 전자책은 리디북스”
알라딘 앱으로 독서를 하는데, 다음부터는 꼭 리디북스를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알라딘 앱은 동기화가 제대로 안되어서 메모가 거진 다 날아가버렸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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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전쟁에서 서부가 이긴 것을 두고 ‘동부의 전통적인 서구철학에 반대되는 서부 해커철학의 승리’라고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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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 모든 사람들이 이용하는 기본권이자, 사소한 정책 하나하나 중요한 사회적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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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삶에서 인간적인 요소를 줄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것 같다.” -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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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너는 제자 클로드 섀넌과 함께 전자 스위치 회로에서 통신으로 전달된 ‘정보’를 측정할 수 잇는 가능성을 만드는 연구를 진행하였다. 1942년 이 정보처리의 단위를 ‘binary digit’의 약어인 ‘비트bit’로 확정하였는데, 이들이 바로 디지털 시대의 원자인 비트를 탄생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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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원자폭탄과 관련된 다양한 모의실험을 위해서는 빠른 속도로 계산할 수 있는 계산기가 필요했는데, 이런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컴퓨터 에니악ENIAC이다. […] 이 컴퓨터에 다른 일을 시키려면 전기회로를 모두 바꿔줘야 한다는 큰 문제점이 있었다. […] 노이만의 개념을 도입한 에드삭EDSAC 컴퓨터를 개발하였고, 이는 최초의 프로그램 내장방식 컴퓨터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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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미국 동부가 컴퓨터 개발의 거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오대호 주변의 호아히오 주나 미시건 주가 19세기 후반 미국 공업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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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자 8인’에는 나중에 페어차일드를 떠나 인텔을 차린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 그리고 실리콘밸리 최고의 벤처캐피탈로 성장하게 되는 KPCB를 설립한 유진 클라이너 등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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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해커 중심 문화에는 미국 서부에서 뜨거운 바람을 일으켰던 대항문화가 그 뿌리로서 존재한다. […] 1968년 시어도어 로작이 처음으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는데, 그는 소외 심리, 동양적 신비주의, 환각 약물, 공동체적 실험에 대한 젊은이의 관심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양식으로 대항문화를 정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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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별, 세대별 차이는 여전히 오늘날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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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스 특허는 훗날 그 가치를 알아본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사들여 주인이 바뀌어버렸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를 위해 지불한 비용이 고작 4만 달러에 불과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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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물과 공기 같은 기본 요소를 만든 데니스 리치의 죽음에는 짧은 뉴스 한 줄로 그치고 만 것이다. 참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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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컴퓨팅 파워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 효율적인 운영체제가 절실히 요구되었다. […] 컴퓨터 친화적인 어셈블리 언어로 개발되었지만, 다양한 시스템에 쉽게 이식하기 위한 목적으로 인간이 보다 읽기 쉽고 고치기 쉽도록 C언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고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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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조이 등이 있었던 에반스 홀 건물 4층에는 켄 톰슨이 주재하는 유닉스 소스코드 강독회의가 수시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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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주커버그가 언급한 해커정신이란 백 마디 말과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바로 실행해보고 혁신하는 문화이다. 실패를 하더라도 빨리 실패하고 거기에서 필요한 교훈을 얻어야 더 나은 서비스와 경험을 고개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 임의적으로 새로운 혁신을 하거나 발명하는 사람을 ‘해커’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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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칸의 뛰어난 아키텍처 개념에 빈튼 서프의 NCP 및 운영체제에 대한 지식이 합쳐지자 마침내 놀라운 성과과 나왔다. 바로 오늘날 인터넷 기기들의 소통언어라 할 수 있는 TCP/IP 프로토콜이 완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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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파가 큰돈을 투자하여 이 분야 최고라고 일커어지던 기업에 맡겨서 작성한 코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버클리대학의 20대 대학원생인 빌 조이가 작성한 코드가 더 뛰어난 성능을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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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SD 유닉스를 자유로운 운영체제로 만드는데 성공한다. 어찌 보면 빌 조이의 TCP/IP에 대한 치기 어린 고집이 오픈소스 정신을 완고한 저작권 법정에서 살려낸 것이라 해석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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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세계적인 과학자 하이젠베르크가 그냥 계속 CERN으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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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스와 함께 엥겔바트 최대의 업적으로 볼 수 있는 사건은 1968년에 이루어졌다. 앞서 시연회 때 보여준 원격 프리젠테이션 기술이 그것이다.[…] 화면의 창이 여러 개로 나누어지거나 관련 문서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능이 연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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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인터넷 역사에 길이 남을 문서인 블랙 제안서의 주인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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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오늘날의 인터넷은 단지 기술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퍼뜨리고 연계시키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활동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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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레이 톰린슨은 ‘이메일은 개인에게 보내는 것이므로 아파넷이 가지고 있는 기계의 주소와는 다른 구분자가 필요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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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상위의 인터넷 주소와 이름을 관리하는 ICANN과 같은 민간기구가 미국에 있으므로 이제부터 여러 국가들이 공동으로 관리하도록 하자는 발표였다. […] 이런 접근 방법은 국가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국가주의가 이면에 숨어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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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경제의 3원칙 - 무어의 법칙, 코즈의 정리, 멧칼프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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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통제에도 결국 인터넷은 우회로를 통해서라도 소통하고야 만다.”라고 주장 - 빈튼 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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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광고 모델은 구글이 자랑하는 롱테일에서 나왔다. […] 이러한 구글의 롱테일 전략을 수행하기 위한 핵심 프로젝트가 바로 애드센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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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자신들의 비즈니스 모델만 고집하다가 망해버린 회사들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자신들의 돈벌이만 생각하고 사용자들이 느끼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것은 얼마 안 가 실패의 원인으로 되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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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는 웹로그를 달리 부른것으로, 개인에게 최적화된 홈페이지로 댓글 관리와 일정, 그리고 트랙백과 같이 블로그를 연결할 수 있는 방법과 구독 등의 기술들이 들어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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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마다 에반 윌리엄스는 “아이스크림도 별로 유용하지는 않아요”라고 답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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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might be a thign fi we pull this off(이거 우리가 제대로 할 수만 있으면 대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