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츠히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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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 ‘예술’의 최선두를 다릴게 될 ‘게임’에서 일어나는 가장 드라미틱한 이야기 ‘바츠히스토리’에 대한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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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바츠 역사상 아키러스가 사과를 한 처음이자 마지막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아키러스는 자손심이 강한 군주였다. 지금까지 그의 지휘 아래 많은 악행이 저질러졌지만 한 번도 사과를 한 적이 없었단. 한데 왜 유독 붉은혁명 혈원 사진 게재 사건에 대해서는 직접 사과를 한 것일까. 아키러스는 게임은 어디까지나 게임일 뿐, 그 시작과 끝이 게임속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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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자리 싸움을 막기 위해 지정해놓은 공동 사냥터가 자리 싸움의 원인이 되어버린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그것은 단순한 자리 싸움에 그치지 않고 바츠대저전쟁의 도화선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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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 서버로 이동하여 반왕으로서의 꿈을 접었던 유저들이 ‘내복단’이라는 이름으로 용던에서의 전투에 참여하기 위하여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21세기 디지털 민주주의가 괴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 서버의 유저들이 속속바츠 서버로 모여들면서 초보자 마을이 붐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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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복단의 활약은 DK동맹이나 바츠동맹 모두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다. 또한 그들의 활약과 전력 보탬은 예상 외로 컸다. 내복단은 바츠동맹 전력의 30%를 담당하면서 DK 동맹이 용던전투에서 패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내복단은 종종 전면전의 승패를 가르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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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1년간에 걸쳐 펼쳐진 1차 바츠대전쟁은 미완의 혁명으로 바츠역사에 기록되게 되었다. 하지만 연인원 수십만 명이 동원된, 비록 사이버상이지만 1950년 6.25 동란 이후 한반도에서 벌어진 최대의 전쟁으로 기록된 이 전쟁은 온라인게임의 발전과 역사에 기연한 흔적은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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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러스는 항상 동맹원들에게 중립혈을 ‘잠재적인 적’이라고 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