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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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인지 인재는 어느 시기에 한쪽에서만 집중적으로 배출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현상도 시간이 좀 지나면 잦아들고, 이번에는 다른 쪽에서 인재가 집중적으로 배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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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의 그리스도교도에게 십자군 원정은 신이 바라는 일을 한다는, 신자로서 더할 나위 없이 정당한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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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병력 부족에 ‘절대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병역 지원자가 있어도 그것을 전력으로 바꾸어가는 데 없어서는 안될, 훈련을 담당하는 이들이 바로 하사관급 배테랑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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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한 인간의 내부에서 야심과 허영심 중 어느 쪽이 더 큰가 하는 것인데,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 인간이 좋은 기회를 얻었을 때 야심으로 움직이는가, 아니면 허영심으로 움직이는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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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에게는 설사 적의 것이라 해도 사람들이 숭상하는 성소에는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좋다는, 종교를 넘어선 지혜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병원 기사단’은 기부로 받은 부동산과 동산의 사용법도 ‘템플 기사단’과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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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나라의 문화이기도 한 무구와 무기는 기술자만 불러들인다고 어디에서나 같은 품질의 물건을 재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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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도에게 가장 중요한 성지는 메카이며, 그 다음은 예언자 마호메트가 죽은 장소인 메디나, 마지막이 마호메트가 하늘로 승천했다고 전해지는 바위가 모셔져 있는 예루살렘이다. 한편 그리스도교에게 중요한 성지는 예수 그리스도가 살았으며 죽었다가 부활한 예루살렘이 첫번째이고, 그다음이 예수가 후계자로 지명한 성 베드로가 순교한 땅인 로마다. 그리고 세번째는 이메리아 반도 북부에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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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이수스 회전과 가우가멜라 회전, 하니발과 로마군을 상대로 완승을 거둔 칸나에 회전, 카이사르의 알레시아 회전과 파르살루스 회전, 전략과 전술 면에서 걸작으로 평가되는 이 전투들은 모두 ‘적수가 있는’ 전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적측에 상당한 능력을 지닌 최고상령관이 있었음에도 승리를 거둔 사례라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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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제3차 십자군의 또 한 가지 특색은 그리스도교측에든 이슬람측에든 기적이나 은총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 한마디로 정리하면, 제3차 십자군은 세속의 인간들이 일으킨 전쟁이었다. 신도, 신의 도움도 끼어들 여지가 없는 오직 인간들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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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장례란 세상을 떠난 이를 애도함과 동시에 남은 사람들이 앞으로 계속 살아가기 위해 치르는 의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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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의 지원에는 네 가지 특성이 있다. 첫쨰, 해당 인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지원했다는 것. 따라서 지원을 받는 사람이나 단체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졌다. 둘쨰, 지원으로 인해 얻는 메리트가 확실하지 않다 해도 망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프리드리히의 경우는 나중에 반역자가 되었으니, 먼 훗날까지 생각하여 지원하는 유형이었다면 이를 단행할 용기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셋쨰, 당장애 필요한 것을 대줄 테니 그뒤로는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지원받는 것들을 어떻게 쓰든 참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교황은 반드시 지원하는 상대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에야 지원을 결정했다. 프란체스코든 프리드리히든 수도사 장이든 당시 사회적 위치가 불안정한 풋내기였지만, 교황 인노켄티우스는 이를 문제삼지 않고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시오노 나나미) 이것이야말로 비기득권자에 대한 기득권자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지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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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조차 총대장은 몬페라토 후작이지만 실상 군의 두뇌는 그였다고 평했던 도제 엔리코 단돌로, 그가 이룩한 최대 업적은 본국 베네치아에서 지중해 동쪽의 모든 통상 요지들을 사슬처럼 연결해 바다의 고속도로망을 완성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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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때는 아직 중앙집권이 확립되지 않은 중세. 계승권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황제나 왕의 지위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힘으로 확립해야 했다. 세습도 자력으로 획득해야만 비로소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시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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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다가 최고사령관을 맡은 프리드리히는 여태껏 전투에서 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런 군사력을 갖췄음에도, 그는 이를 사용하지 않고 해결하는 방법을 우선시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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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한 글을 쓰면서 통감하는 것 중 하나는, 정보는 그 중요성을 인식한 자에게만 올바로 전해진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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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정’과 ‘외정’은 정치인 건 같아도 성격이 다르다. […] 따라서 외정 담당자에게는 내정을 담당하는 자 이상의 현명함이 요구된다. 교활하거나 악랄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의 지적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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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인갑답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신의다. 다시 말해 약속한 것을 지키는 자세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깨는 상대와는 협정을 맺어봐야 소용없지만, 달리 방책이 없으면 그것에라도 매달리게 마련이다. […] 그러나 일국의 왕까지 똑같은 행동을 한다면 절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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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교황에게는 직접 운용할 수 있는 군사력이 없다. 그래서 십자군도 왕과 제후를 통해 실현해야 했는데, 이런 입장에 있는 사람이나 조직은 항상 복수의 선택지를 손에 쥐고서 어느 한쪽이 강력해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