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필요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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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삶을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지금 노예의 굴종과 비겁을 감내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노예로 살기를 결정한 셈이고, 지금 주인의 당당함과 자유를 쟁취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주인으로 살기를 결정한 셈이다. […] 자유롭고 싶은가? 그렇다면 니체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지금 인생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아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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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이면 우리는 페르소나를 벗고 자신의 맨얼굴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렇지만 맨얼굴이라고 믿었던 것도 사실 또 하나의 페르소나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바로 여기에 인간이 겪을 수밖에 없는 비극이 있다. 자신의 페르소나를 애써 벗자마자, 맨얼굴이 아니라 새로운 페르소나를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우리의 맨얼굴은 얼마나 많은 페르소나를 벗겨야만 찾을 수 있는 것일까? […] 맨 얼굴이 건강하다면, 우리는 다양한 페르소나를 쓸 수 있는 힘을 얻을 것이다. 불행히도 맨얼굴을 관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이 쓰고 있는 페르소나를 벗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페르소나를 벗는 순간 망가지 맨얼굴을 볼까 두렵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이 에픽테토스가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가르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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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일어난 생각은 이어지지 않도록 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생각은 일어러나지 않도록 하면 그대들이 10년 동안 행각하는 것보다 좋을 것이다. 나의 생각에는 불법에는 복잡한 것이 없다. 단지 평상시에 옷 입고 밥 먹으며 일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임제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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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대한 집착이나 미래에 대한 염려는 ‘지금 그리고 여기’ 펼쳐지는 현재의 삶을 보지 못하게 만들고, 당연히 현재의 행복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임제의 가리츰은 단도직입저이다. 현재를 영위하라! 과거나 미래로부터 자유로워져라! 그러면 너희들은 깨달을 것이다.! […]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잡아라’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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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쇄락의 경지 혹은 성인의 마음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통은 “이 마음이 확연히 크게 공졍해져 남과 나라는 편벽되거나 치우친 생각이 없게 되는” 상태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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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부단히 자신의 마음이 좁아져 있지 않은지 반성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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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혜능은 “거울에는 틀이 없다”는 말로써, 마음을 실체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던 것이다. 마음에 대한 것이든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든 칩착은 우리로 하여금 타자와의 소통을 가로막는 주범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을 닦느라고 타인의 마음을 읽고 위로하지 못한다면, 불교가 강조했던 자비가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 우리가 무엇인가에 몰입하고 있을 때, 자신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타자가 방치된 채 시들어가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무서운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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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스피노자, 그리고 우리의 동학이 중요한 이유는 두 사유 전통이 공통적으로 인간이 직면하는 난제를 초월자에게 호소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인문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 인간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성찰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비록 실패의 가능성이 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이것이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인문정신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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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한계 상황에서 불행히도 죽음이 자신을 반기게 되더라도 그들은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아니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죽음을 앞두고도 당당할 수 있었다. 그들은 삶에 더 이상 미련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다 해본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삶에 미련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비극적 당당함이 요약된 구절이 바로 ‘진인사대청명’이란 짧은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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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두려운 악인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하지 않으며, 죽음이 오면 이미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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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순수하고 실천적인 법칙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이 적극적 의미에서의 자유다. 그러므로 도덕 법칙은 다름 아니라 순수 실천 이상, 다시 말해 자유의 자율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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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행위가 사회적 통념에 맞느냐 그르냐가 쟁점이 아니라, 행위자가 자율적인 선택을 했느냐 타율적 선택을 했느냐가 쟁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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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는 돈을 목적으로 인간을 수단으로 만드는 체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인간을 목적으로 보자는 칸튼의 주장은 자본주의 체제에는 위험천만한 것이다. […] 가라타니 고진이 이 대목을 놓칠 리가 없다. 그래서 그는 “타인을 목적으로 대하라”는 칸트의 윤리적 명령을 토대로 반자본주의적 공동체를 모색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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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나스는 집단성을 “타자를 자신과 얼굴을 맞댄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과 나란히 서 있는 자로 인식하는”것이라고 규정한 대목은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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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약자 지정석이 마련되어 있다. […] 그렇지만 때때로 이런 제도가 윤리적인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윤리란 타인에 대한 주체의 애정이나 배려, 그리고 주체의 자율적인 결단을 전제해야만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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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의 눈에는 동방예의지국에는 맹목적인 에절과 제도만이 있을 뿐,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셈서한 감수성과 애정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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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은 흔히 실학의 집대성자라고 불린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의 실학 정신이 타자와 무관한 자기 수향이 아니라, 타자와 관련된 윤리적 실천이 중요하다는 그의 통찰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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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렌트가 지적했던 것처럼 언제든지 아이히만이 될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아이히만처럼 무사유의 상태에 빠져 있다면, 아이히만이 저지른 악, 즉 무사유로 인한 악은 도처에서 생겨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에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아렌트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지금 당신은 근면과 성실이란 미명 아래 사유의 믜무를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 당신은 생각해야 할 것을 생각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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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리다가 유언처럼 나긴 충고가 지금까지 모든 현명한 사람들이 남긴 말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체의 대가 없이 네가 가진 것을 주어야만 한다.” “수확의 기대 없이 심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그렇다. 데리다는 우리가 너무나 진부하다고 생각했던 지혜로운 자들의 가르침을 새롭게 되새긴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우리가 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망각하고, 망각해야만 하는 것을 망각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가르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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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지만 잊지 말자. 타자에 대한 민감한 감수성이 없다면, 새로운 단어를 찾아 집요하게 표현하는 노력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분명 타자와의 공존과 소통이 가능한 사회나 문명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이루어야 할 소망일 것이다. 그래서 남성은 여성의 감수성을 배워야 하고, 여성이 자신의 언어를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윤리적 요구만은 아니다. 타자와 공존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추지 않는다면, 인류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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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를 사랑할 때 사랑하는 마음을 제외한 일체의 마음을 비워야 한다. 오직 비어 있는 잔만이 술이 가득 차기를 희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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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판적이고 논리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은 상대방의 역린을 읽을 수 있는 수사학적 감수성이 없다면 빛을 발할 수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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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삼단논법을 형식적으로 분석하는 것에만 만족하지 않았다. 그가 진정으로 찾고자 했던 것은 ‘적합한 전체들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 나아가 ‘적합한 전체들을 파악해서 삼단논법을 구축할 수 있는 능력’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