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1

번역이 모든 내용을 망친 책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책 아닐까?


  1. 잡스는 또한 별다른 가치도 없어 보이는 교육에 부모님의 돈을 그렇게나 많이 쓰는 것에 죄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훗날 밝혔다. “노도자 계층에 속하는 부모님이 평생 모은 돈 전부가 저의 대학 학비로 소진되고 있었어요.” […] “자퇴하자마자 관심 없는 필수과목들은 제쳐 놓고 흥미로워보이는 수업들만 골라서 듣기 시작했지요.” […] 그런 과목들 중에 캘리그래피 수업이 있었다. 캠퍼스 내에 붙은 대부분의 포스터에 글씨가 멋지게 그려져 있는 것을 보았던 터라 잡스는 그 수업에 큰 매력을 느꼈다. “그 수업에서 세리프체와 산 세리프체를 배웠고, 글자를 조합할 때 글자 사이 공간을 조절하는 방법, 조판을 멋지게 구성하는 방법 등에 대해서도 배웠지요. 과학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심미적이고 역사적인 무엇, 예술적으로 미묘한 무엇을 느낄 수 있는 수업이었어요.”

  2. 서구에서 중시하는 이성적인 사고는 인간의 본연적 특성이 아닙니다. 그것은 후천적으로 학습하는 것이며 서구 문명이 이루어 낸 훌륭한 성취이기도 합니다. 인도 사람들은 이성적인 사고를 학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른 무언가를 터득했는데,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이성 못지않게 가치가 있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그것이 바로 직관과 경험적 지혜의 힘입니다.[…] 마음에 평온이 찾아오고 현재의 순간이 한없이 확장되는 게 느껴집니다. 또 전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는 밝은 눈이 생겨납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수양이며, 지속적으로 훈련해야 하는 것 입니다.

  3. […] 나중에 잡스와 친구가 된 뮤지션 보노는 록 음악과 마약에 반항 정신을 특징으로 하는 베이에어리어의 반문화 세대가 결국 PC 산업이 일어나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 공감했다. 보노는 말한다. “21세기를 창조한 사람들은 결국 스티브처럼 마리화나를 즐기고 긴 머리에 샌들을 신고 다니던 서부해야 지역의 히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다르게 사고할 줄 알았지요. 미국 동부나 영국, 독일, 일본의 기존 전통 세대들은 그런 다른 종류의 사고방식을 장려하지 않았습니다. 1960년대는 무정부주의적 사고를 만들어 냈고 그런 사고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세상을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었습니다.”

  4. […] 워즈는 훗날 이렇게 회상했다. “키보드를 몇 개 눌러 보았습니다. 그러곤 정말 깜짝 놀랐어요. 제가 누른 글자가 화면에 나타나지 뭡니까!” 1975년 6월 29일 일요일, PC 역사에 한 획이 그어지는 순간이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키보드의 글자를 쳐서 그것을 바로 눈앞에 있는 화면에 띄우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5. 마쿨라는 ‘애플의 마케팅 철학’을 종이 한 쪽으로 정리했다. 이 문서에서 그는 세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는 ‘공감’이었다. 즉 고객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고객과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다른 어떤 기업보다도 고객의 욕구를 진정으로 이해한다.” 둘째는 ‘집중’이었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일을 훌륭하게 완수해내기 위해서는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서 눈을 돌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원칙은 ‘인상’이었다. 사람들이 기업이나 제품이 전달하는 신호와 분위기를 토대로 그 기업이나 제품에 대해 특정한 의견을 갖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원칙이었다. “사람들이 책을 판단할 때 가장 먼저 기준으로 삼는 것은 표지다. 우리가 최고의 제품, 최고의 품질, 가장 유용한 소프트웨어를 갖추고 있다해도 그것을 형편없는 방식으로 소개하면 그것은 형편없는 것으로 인식된다. 창의적이고 전문가다운 방식으로 소개하면, 그것은 최상의 품질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 주게 된다.”

  6. 그의 인생에서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한 몇 안 되는 수간이었다. 그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그때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엔 제가 아버지가 된다는 걸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현실을 인정하지 않았지요. 하지만 리사가 내 딸이라는 친자 검사 결과가 나왔을 때, 내가 그 결과를 의심했다는 건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리사가 열여덜 삶이 될 때까지 양육비를 지원하고 크리스앤에게도 생활비를 지불하기로 했습니다. […] 하지만 만일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때보다는 현명하게 행동할 겁니다.”

  7. 또 일각에서는 애플이 도둑질을 한 것이 아니라 제록스가 실수한 것이라고 평가한다.(잡스는 종종 이런 평가에 동의를 표했다.) 잡스는 제록스 경영진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컴퓨터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였어요. 최고의 기술을 손에 쥐고도 성공을 놓쳤지요. 제록스가 컴퓨터 업게 전체를 장악할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 위의 두 평가는 상당한 진실을 담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보다 더 중요한 포인트가 존재한다. 시인 엘리엇이 말했듯이, 구상과 창조 사이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마련이다. 혁신의 역사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는 전체 그림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것을 현실화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잡스와 애플 팀원들은 PARC에서 목격한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현저하게 개선했다. 그리고 제록스가 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그것을 실제 제품에 구현했다.

  8. 앳킨슨은 회상한다. “모르고 덤비는 도전이 지닌 힘을 깨달았어요. 불가능하다고는 아예 생각조차 안 했기 때문에 결국 해낼 수 있었던 거지요.”

  9. […] 잡스에게는 그들이 자기 새대보다 더 물질주의적이고 경력이나 취업에만 신경 쓰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말했다. “제가 학교를 다닌 시절은 1960년대를 막 지난 직후였고, 지금처럼 현실적인 목표 의식을 가진 세대가 등장하기 전이었지요. 요즘 학생들은 이상을 추구하려는 생각을 하질 않아요. 경영 수업만 열심히 받지, 이 시대에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철학적인 문제들에 시간을 쏟고 싶어 하지 않지요.”

  10. 버드 트리블은 회상한다. “스스로 이런 다짐들을 했지요. ‘어차피 뭔가를 만들 거라면 이왕이면 아름답게 만드는 게 좋지 않을까?’”

  11. 나중에 오야마가 설명했다. “솔직히 말하면, 스티브가 저희에게 말해 주기 전까지는 컴퓨터가 ‘친근해야 한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조차 몰랐어요.”

  12. 허츠펠드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한다. “빌은 다음 날 오후 만면에 웃을 띠고 텍사코 타워스로 돌아왔어요. 그의 데모는 이제 모서리가 둥근 아름다운 직사각형들을 굉장한 속도로 그릴 수 있게 되었지요.” 리사와 맥, 그리고 이후 거의 모든 컴퓨터의 대화 상자와 창 들은 둥근 모서리를 가지게 되었다.

  13. 매킨토시가 나중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창출한 환경과 따로 놀게 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맥킨토시는 자신의 하드웨어에서만 돌아가는 운영체제를 보유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는(나중에는 구글의 안드로이드도) 다른 다양한 회사들이 만든 하드웨어에서도 구동될 수 있었다.

  14. 잡스가 매킨토시를 세상에 선보인 그날 «파퓰러 사이언스»의 기자 하나가 어떤 방식으로 시장조사를 했느냐고 잡스에게 물었다. 잡스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시장조사 같은 걸 하고 전화를 발명했습니까?”

  15. 잡스가 회상한다. “매킨토시를 개발하는 동안 배운 것은, A급 직원들은 A급 직원들하고만 일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B급 직원들은 묵과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지요.”

  16. 그래서 잡스가 복귀한 후 애플 제품들을 검토하는 기간에 제일 먼저 한 일은 파워포인트 사용을 금지한 것이었다. “머리를 써서 생각하지는 않고 슬라이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에 저는 반대합니다. 프레젠테이션 가지고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제가 더 생기지요. 슬라이드만 잔뜩 들이대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끈질기게 논의해서 결론을 내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자신이 말하는 내용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에겐 파워포인트 같은 게 필요 없습니다.”

  17. […] 잡스는 복잡성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극복함으로써 얻는 단순성을 추구했다. “상당한 노력이 있어야 하죠.” 잡스가 말한다. “무언가를 단순화하는 것, 잠재적인 난제들을 이해하고 명쾌한 해결책을 내 놓는 것 말입니다.”

  18. […] 슬롯 드라이브를 채택한 애플은 음악을 선별해 CD로 굽고 싶어 하는 사용자들의 요구에 신속히 대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로 말미암아 애플은 경쟁자를 뛰어넘을 수 있는 창의적이고 대담한 길을 찾아야 했고, 잡스는 마침내 음악 시장에 뛰어들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19. […] 그래서 그는 모든 부서가 동시에 협력하여 일하기를 바랐다. 이를 위해 그가 이용한 문구는 ‘깊은 협력’과 ‘동시 공정’이었다. 제품이 엔지니어링, 디자인, 제조, 마케팅, 유통 단계를 순차적으로 통과하는 공정이 아닌, 이들 여러 부문이 동시에 협력하는 공정을 원했던 것이다. “우리의 방식은 통합된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었어요. 이는 곧 공정 또한 통합적이고 협력적이어야 한다는 의미였지요.”

20.

[…] 하지만 그는 지적 재산권은 보호받아야 하며, 예술가들이 창작물로 돈을 벌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결국 개발 과정이 거의 마무리될 무렵, 자스는 아이팟의 동기화를 한 방향으로만 작동시키기로 결정했다. 즉 사용자가 컴퓨터의 음악을 아이팟으로 옮길 수는 있지만 아이팟에 든 음악을 컴퓨터로 옮길 수는 없도록 한 것이다. […] “음악은 훔치는 게 아닙니다.(Don’t Steal Music)”

  1. 어느 기자가 그에게(워즈니악) 애플 생태계의 폐쇄적 속성에 대해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애플은 사람들을 그들의 놀이 울타리 안에 가둬 놓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몇 가지 이점이 있지요.

  2. 그는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냥 전원 스위치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딸깍!’ 누르면 그냥 꺼져 버리는 거지요.”

Written on January 1,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