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의 도마복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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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신관의 존중이 왜 다원주의의 부정을 의미해야 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진정한 유일신론은 종교적 문제를 포함한 삼라만상의 다원성을 포용하지 않을 수 없다. 일(一)은 곧 다(多)이다. 진정한 유일신은 오로지 하나일 수밖에 없으며, 오로지 하나인 신은 전체일 수밖에 없다. 전체가 아니라면 타에 의하여 국한되는 개별자가 되고 만다. 그것은 유일신론이 아닌 단일신론에 불과하다. “나의 하나님”만을 배타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유일신론이 아닌 저급한 다신론적 세계관 속의 단일신의 권력적 횡포에 불과하다. 그것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닌, 저주의 개별신이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가 탈레반의 땅에 가서 복음을 전한다는 사명은 그릇 해석된 유일신론의 횡포에 불과하다. 탈레반의 하나님과 한국 대형교회 사람들이 믿는 하나님을 통괄하는 오직 하나이신 전우주적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없이, 편협한 인간의 언어와 가치관으로 해석된 단일한 하나님 상(像)의 강요는 전도주의적 획일주의의 만행에 불과하다. 그것을 순교의 사명이나 진취적 정신의 개가로서 예찬할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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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상황은 변할 수도 있다. 그들이 내린 최종 결론은 이 외경문서 코우덱스를 우선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 감춰두기로 한 단안이었다.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에도 그 많은 문서들이 토벽 속에 숨겨졌던 사실을 생각하면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정이었다. 그들은 문화를 존중할 줄 아는 종교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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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은 정신분열증 환자를 단순하게 비정상인으로 바라보지 않는다.그 환자의 신화의 체계가 우리의 신화 체계와 다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신화 체계는 오히려 미트라스 종교를 만들어냈던 사람들의 신화 체계와 동일했던 것이다. 그것은 어떤 특수한 문화유형론으로 설명되어서는 아니된다. 그 신화는 어떤 보편적 인간의 의식구조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한다. 신화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이 바로 이제 우리가 영지주의 문서라고 애매하게 불러왔던 나그함마디 코우덱스의 세계로 진입하게 되는 이론적 실마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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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녀 마리아 탄생설화는 어떤 위대한 창시적 인물을 기술할 때 인류가 공통으로 사용해온 아키타입에 속하는 것이다. 부계사회에서 아들은 항상 아버지의 권위에 소속되기 때문에 아들을 창시자로 만들 때는 반드시 인간 아버지는 사라져야 한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도 박(朴)과 같이 큰 알(大卵)을 깨뜨리고 나왔고, 석탈해도 알로 태어나 비단 금궤에 실려 강물에 둥둥 떠다니다가 모세처럼 극적으로 건져졌다. 모세와 탈해는 같은 뜻의 이름들이다.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 고주몽(高朱蒙)도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解慕漱)의 영기를 받은 유화(柳花)가 낳은 알을 깨뜨리고 나왔다. 이 모두가 동정녀 마리아 설화의 다른 표현양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