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역사 (하)

수학은 과학의 여왕이고, 수론은 수학의 여왕이다. - 가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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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권에서는 상권에서 소개했던 길고 깊은 ‘기하학’의 터널을 통과해서 해석학으로 들어온다. 해석기하학의 태동과 대수학의 발전이 19세기와 20세기를 어떻게 움직였는지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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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극도로 추상화된 현대수학의 단면을 잘라내면 우리가 볼 수 있는건 ‘대수’, ‘기하’, ‘해석’ 그리고 이 책에서 많이 다루고 있진 않지만 ‘통계’정도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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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학 덕분에 기하의 중요도가 다소 낮아진듯 하다. 그러나 현대수학으로 진입하는 입구에 놓여진 플라톤의 그 유명한 문구 “기하학을 모르는 자 이문을 들어올 수 없다.”가 아직도 그 힘을 발휘하고 있고, 천재의 도움을 받아서 기하학을 좌표에서 ‘해석’하는 작업 끝에 우리 앞에 놓여진 토폴로지와 그의 단짝인 ‘현대물리’인걸 생각해보면 수학의 여왕은 수론이 아니라 ‘기하’에게 돌려줘야 하는게 아닐까?

수학에서 아무리 추상적인 분야일지라도 언젠가는 현실세계의 현상에 적용되는 날이 있을 것이다. - 로비체프스키

  1. […] ‘기하학’을 완성했다. 이 논문으로 사람들은 해석기하학을 알게 되었다. […] 독립된 논문으로서가 아니라 그의 철학적 방법 전반을 설명하기 위해 씌어진 ‘방법서설’의 세 부록 가운데 하나로 세상에 나온 것이다.

  2. […] 그러나 ‘수학적 귀납법’이라는 이름은 훨씬 뒤인 1838년의 페니 백과사전에 드 모르간이 귀납법에 대해서 쓴 글에서 나온 것 같다.

  3. […] 곧, 뉴턴이 뒤에 명확히 했던 이항정리, 미적분법, 중력의 법칙, 색의 성질의 발견이 몇 달 사이에 이루어졌다.

  4. […] 오일러의 펜의 힘은 그의 지력을 능가했다고 이야기될 정도로 논문을 쓉게 썼다. […] 그리고 일찍이 어떤 수학자도 오일러의 논문 수를 능가한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아라고는 ‘해석학의 화신’이라고 했다.

  5. 어느 시대의 수학자들이나 대부분 철학자로서 활동했다.

  6. […] 그들이 정당하게 평가되지 못한 까닭은 그들이 살던 나라가 수학의 중심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7. […] 가우스는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발견을 기록하였다.

  8. 코시는 어떤 점에서 가우스와 매우 달라서 어떤 연구 결과를 얻자마자 망설이지 않고 바로 출판하였다. 아마 이것이 가우스가 매우 고도의 논리적 정확성을 설정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수학의 주요한 특징, 곧 엄밀성의 도입을 오히려 코시에게 돌리고 있는 까닭일 것이다.

  9. 데데킨트는 오늘날 칸토어-데데킨트의 공리로 알려진 공리를 가정하면 유리수의 영역은 실수의 연속체를 구성하도록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10. 19세기의 대수학은 상반되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일반화와 추상화에 대한 경향이 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전 세기에 다룬 것보다 더욱 주의 깊게 정의된 것을 필요로 하는 식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11. […] B.퍼스가 1870년에 그 유명한 정의 ‘수학이란 필요한 결론을 끌어내는 과학이다”를 내린 것은 그의 선형 결합 대수의 저작과 관련된다.

Written on January 24, 2016